20세기 음악 5편: 기계문명의 발달과 새로운 음향
서론
20세기 후반의 음악은 과거와 뚜렷이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예술사조와 음악 어법을 1970년 전후로 나누어 보면, 1970년 이전에는 총렬주의(total serialism), 우연성 음악(chance music),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 미니멀음악(minimal music) 등의 실험적 경향이 나타났다. 1970년 이후에는 이러한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공존하면서도, 포괄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태도로 묶일 수 있다.
이러한 음악적 전환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있었다. 19세기 말의 녹음기 발명, 1920년대의 마이크와 확성기, 그리고 영화·라디오·TV 같은 매체의 등장은 음악의 기록·전달·합성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특히 기계문명의 발달은 음악을 단순히 선율·화성·리듬의 예술로만 바라보지 않고, 소리 자체를 조작하고 탐구하는 예술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구체음악, 전자음악, 음색작곡이라는 세 가지 대표적 경향이 꽃피었다.
1. 구체음악 (Musique Concrète)
- 시작과 개념: 1940년대 후반 파리에서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셰페르가 라디오 방송국 실험 스튜디오에서 처음 시도.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녹음·편집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 특징
- 문 닫는 소리, 기차나 자동차의 소음, 병 따는 소리 등 일상의 음향을 녹음 후 잘라내거나 반복·역재생하여 작품화
- 전통적인 악보 대신 테이프 편집과 마이크 사용이 핵심 도구
- 음악과 소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
- 대표 작품
- 셰페르 《5개의 연습곡》(Études de bruits), 《철도 연구》 — 기계음과 생활음을 음악적 맥락으로 전환
- 확산과 영향
- 피에르 앙리와의 협업으로 구체음악은 더욱 체계화
- 미국에서는 테이프 음악(tape music)으로 발전하며 전자음악과 접목
- 메시앙, 우사쳅스키, 슈톡하우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 이후 전자음악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2. 전자음악 (Elektronische Musik)
- 시작과 개념: 자연음 대신, 전자적으로 합성된 소리를 재료로 삼는 음악. 1950년대 독일 쾰른 전자음악 스튜디오가 중심이었으며, 프리드리히 트라웃바인 등이 초창기 장비를 개발했다.
- 기술적 기반
- 발진기와 신시사이저의 발명으로 전통 악기에서 얻을 수 없는 소리를 창조. 초기에는 단순한 전자음의 조합이었으나, 점차 멀티트랙 녹음과 믹싱이 가능해지며 복잡한 구조를 형성했다.
- 발전 배경
- 총렬주의의 한계(과도한 이론화, 청중과의 거리감)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음향의 창출을 지향. 전통 악기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순수하게 합성된 음향”으로 음악을 구성하려 했다.
- 특징
- 오실레이터로 파형을 설계하고, 소리를 수학적으로 조직
- 음의 길이, 높이, 강도, 음색을 과학적으로 정밀 제어
- 초기에는 차갑고 인공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이후 신시사이저 보급으로 대중음악과 영화음악에도 활용
- 대표 작품
- 슈톡하우젠 《습작》(Studie), 《젊은이의 노래》(Gesang der Jünglinge) — 전자음과 소년 합창의 결합
- 불레즈와 바베제도 전자음악 실험에 동참하여 현대음악 어법을 확장
보강 문단: 전자음악의 발전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총렬주의의 엄격한 조직 원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슈톡하우젠은 음의 높이뿐 아니라 길이·강도·음색까지 수열처럼 조직하려 했고, 이는 전자매체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통제는 곧 작곡가의 의도를 해체하려는 우연성 음악과 알레아의 등장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 흐름은 다음 편에서 더 깊이 다룬다.
3. 음색작곡 (Klangfarbenmusik, Sound-Color Composition)
- 개념: 쇤베르크의 ‘음색선율’ 개념에서 출발해, 1960년대 이후 음색 자체를 음악의 구조적 핵심으로 삼은 경향.
- 특징
- “한 작품이 어떻게 들릴 것인가”라는 청중 중심의 청각적 인식을 강조
- 음을 선율이나 화성보다 질감·색채의 조합으로 파악
- 오케스트라의 전통적 사용을 해체하고, 확장주법과 대규모 음향 덩어리를 탐구
- 대표 작곡가와 작품
- 리게티 《Atmosphères》, 《Lux Aeterna》(영원한 빛) — 미시구조 기법, 음향 덩어리의 전개
-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 극단적 음색 효과와 집단적 울림
- 베리오 《Sinfonia》 — 기존 음악 인용과 음색 실험 결합
- 윤이상 《예악》, 《무악》, 《심청》, 《광주여 영원히》 —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리듬을 서양 현대어법과 결합하여 독창적 음향 세계를 구축
음색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구조적 요소로 격상시키며, 전자음악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청각 경험을 제공했다. 이는 현대 오케스트라의 쓰임새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영화음악·멀티미디어 예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윤이상은 동서양의 음향 세계를 결합한 대표적 작곡가로, 20세기 음색작곡의 지평을 확장한 인물로 평가된다.
결론
20세기 후반의 음악은 기계문명이 낳은 새로운 음향의 추구 속에서 크게 확장되었다. 구체음악은 현실의 소리를 작품으로 끌어들였고, 전자음악은 순수 전자음을 통해 전례 없는 음향을 창조했으며, 음색작곡은 소리의 질감을 음악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러한 세 경향은 서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 교차하며 현대음악의 다원적 지형을 형성했다. 구체음악은 전자음악의 출발점이 되었고, 전자음악은 음색작곡과 결합하여 새로운 청각적 차원을 열었으며, 음색작곡은 다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의 영향을 받아 더욱 풍부한 질감을 창출했다. 나아가 이 모든 흐름은 아방가르드, 미니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음악사의 거대한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기계문명이 제공한 새로운 도구와 매체는 단순한 수단을 넘어, 음악의 본질적 개념을 다시 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