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음악 3편: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서론
20세기 초 유럽 음악은 낭만주의의 확장된 화성과 감정 표현이 극한에 다다르며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했다. 바그너와 말러를 거치며 장·단조 체계의 기능은 점차 붕괴되었고, 전통 조성음악은 더 이상 새로운 표현을 담아내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동한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이 주도한 집단, 즉 제2빈악파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무조음악과 표현주의, 나아가 12음 기법과 음열주의를 창안하여 20세기 음악사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1. 역사적 배경과 사상적 맥락
후기 낭만주의는 극도로 확장된 반음계와 불협화 속에서 조성 체계의 한계를 드러냈다. 쇤베르크와 제자들은 이러한 붕괴를 단순한 해체로 두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았다. 당대 미술과 문학의 흐름도 이들과 맞닿아 있었다. 특히 표현주의 예술은 인간의 내면적 불안, 갈등, 잠재적 충동을 과장되고 왜곡된 방식으로 묘사했으며, 음악에서도 이러한 정서가 공유되었다. 제2빈악파는 낭만주의의 감정과 긴장을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전통 조성 밖의 새로운 언어로 구현하고자 했다.
2. 표현주의 음악
표현주의는 인상주의와 대립적 관계를 이룬다. 인상주의가 순간적 감각과 외적 인상을 섬세히 묘사했다면, 표현주의는 내면 세계의 불안과 심리를 음악으로 드러냈다. 무조적 선율, 날카로운 불협화, 원시적 리듬, 단편적인 선율 구조, 특이한 악기 편성 등이 그 특징이다.
- 쇤베르크 「기대(Erwartung)」: 여성 독창과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노드라마로, 격정적인 불협화와 원시적 리듬이 내면의 광기를 드러낸다.
- 쇤베르크 「달에 홀린 삐에로(Pierrot lunaire)」: 멜로드라마 형식의 연가곡으로, 각 곡마다 다른 반주 편성을 사용하며, 2중 카논·3성 푸가 등 정교한 대위법과 세밀한 기보가 돋보인다.
- 베르크 「보체크(Wozzeck)」: 표현주의 연극에 기초한 오페라로, 무조적 어법과 사실적 효과음을 사용하여 사회적·인간적 고통을 표현했다.
표현주의 음악은 대중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20세기 전위 음악의 정서를 여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3. 무조성과 새로운 질서의 모색
무조성 음악(atonality) 은 특정 중심음 없이 12음을 모두 동등하게 취급하는 음악을 말한다. 쇤베르크는 이를 범조성(pantonal)이라 불렀다. 후기 낭만주의의 불협화 확대와 전통 화성의 붕괴는 무조의 등장을 필연적으로 이끌었다.
무조 음악은 화성적 안정 대신 선율적 긴장과 대위법적 구조를 중시했다. 불연속적이고 불안정한 선율과 화성은 새로운 감정 세계를 열어주었다.
- 쇤베르크 「현악 4중주 2번」, 「피아노 소품 Op.11」 등은 무조적 어법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이다.
이 시도는 단순한 해체가 아니라, 새로운 체계를 향한 준비 단계였다. 이후 1920년대 쇤베르크는 무조적 어법을 더 조직화하여 12음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4. 12음기법과 음열주의
1920년대 쇤베르크는 12개의 반음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하는 12음기법을 정립하였다. 기본 음열은 전위형, 역행형, 전위역행형으로 변형되며 총 48개의 음열이 파생된다. 이러한 구조는 매트릭스(matrix)라 불리며, 체계적 작곡을 가능하게 했다.
베베른은 이를 극도로 응축된 형태로 발전시켜 점묘주의적이고 간결한 음악을 남겼고, 베르크는 낭만적 서정성과 결합해 보다 극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12음기법은 훗날 리듬·음색까지 확장된 총렬주의(total serialism)의 기초가 되었다.
- 쇤베르크 「피아노 모음곡 Op.25」: 12음기법이 완전히 정립된 대표작.
- 베베른 「교향곡 Op.21」: 점묘적 음향과 간결한 구조의 전형.
- 베르크 「서정 모음곡」: 음열주의 속에서도 서정적 정서를 잃지 않은 작품.
5. 작곡가별 탐구
5-1. 아르놀트 쇤베르크 (Arnold Schönberg, 1874–1951)
- 1기: 후기 낭만주의적 양식. 브람스의 발전적 변형기법과 바그너의 반음계 화성·불협화 기법을 흡수. 대표작: 「정화된 밤」, 「구레의 노래」.
- 2기: 무조성 표현주의 음악. 대표작: 「기대」, 「달에 홀린 삐에로」.
- 3기: 12음기법과 음열주의의 실험기.
- 4기: 12음기법이 정립된 시기. 대표작: 「피아노 모음곡 Op.25」.
- 5기: 조성과 12음을 절충한 후기. 미국 망명 후의 작품들이 이에 속한다.
쇤베르크는 작곡뿐 아니라 이론적 저술과 교육을 통해 세대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5-2. 알반 베르크 (Alban Berg, 1885–1935)
베르크는 스승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을 받아들이되, 낭만적 서정성과 극적 감수성을 결합했다. 그의 음악은 무조와 조성을 융합하여 보다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 대표작: 「서정적 모음곡」, 현악 4중주, 오페라 「보체크」, 「룰루」.
베르크는 음열의 구조적 엄격함 속에서도 극적 긴장과 서정적 아름다움을 담아, 제2빈악파 중 가장 넓은 청중의 호응을 얻은 작곡가였다.
5-3. 안톤 베베른 (Anton Webern, 1883–1945)
베베른은 제2빈악파 중 가장 급진적인 실험가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짧고 간결하며, 낭만주의적 대형 양식과 철저히 단절한다. 간결함과 함축성, 점묘적 기법, 소편성이 특징이다.
- 1기: 자유로운 무조성, 점묘주의적 시도.
- 2기: 12음기법 정착기, 신고전주의적 구조와의 융합.
대표작: 「교향곡 Op.21」, 「칸타타」 등. 그의 양식은 후대 전위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다름슈타트 악파가 그의 미학을 계승하였다.
결론
제2빈악파는 낭만주의 이후의 음악 언어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재구성하려 했던 집단이었다. 표현주의, 무조성, 12음 음열주의라는 새로운 어법을 개척하며, 전통과의 단절을 넘어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규범을 세웠다. 당대 청중에게는 난해하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이후 아방가르드와 현대 작곡가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제2빈악파는 단순히 한 시대의 유행이 아닌, 20세기 음악 언어의 기원으로 자리하며,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두 축을 통해 후대 음악사의 방향을 규정짓는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