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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전주의 음악사 : 갈랑양식, 감정과다양식, 질풍노도

by edu414 2025. 9. 2.

1. 개요 — 전고전주의란?

전고전주의는 대체로 1730~1780년 초, 바로크와 고전주의 사이의 과도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는 통주저음의 권위가 약해지고 선율·악구·종지의 명료성이 중시되었다. 계몽주의의 합리성은 ‘이해 가능한 음악’을 요구했기에 작곡가들은 명확한 구조와 균형, 자연스러운 대비로 청중의 즉각적 공감을 추구했다. 전고전주의와 고전주의는 그 시기와 양식이 서로 겹쳐 보이며, 고전시대를 좁게는 1750년(바흐 서거)~1812년(베토벤 중기) 또는 1814년(빈 회의)까지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법의 모태는 바로 이 전고전주의적 과도기에서 이미 태동되어 체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미학의 공통분모

양식은 달라도 지향점은 겹친다. 복잡한 모방대위 대신 가벼운 짜임새와 주기적 프레이징, 정확한 종지(cadencd), 선명한 조성 대비가 선호되었다. 8마디 악절, 질문–응답형 악구, 정격/반종지의 관습화로 문장성이 강화되고, 장식은 과시가 아니라 감정의 어조를 살리는 수단으로 절제된다. 리듬은 말하듯 흐르도록 정돈되며, 포르테피아노의 등장으로 섬세한 다이내믹과 음색 대비가 전면에 오른다. 서술의 초점은 듣기 쉬움과 전달력이며, 작곡가는 작은 동기를 분명히 제시하고 변형해 청중이 따라갈 수 있는 서사를 만든다.

3. 갈랑 양식

프랑스어로 갈랑트(galant)는 ‘우아하고 세련된’ 취향을 뜻하며 바로크 말기의 복잡한 양식을 탈피하여 자연스럽고 민속적인 특징을 가진 편안한 양식을 말한다. 갈랑양식의 음악은 바로크의 대위법적 음악에서 물러나 느린 화성리듬,  2~3성부 정도의 단순한 짜임새, 뚜렷한 악구와 종지로 편안한 흐름을 만든다. 알베르티 베이스(분산화음 반주), 앞·뒤 문장형, 노래하는 선율이 특징이며 대표적 작곡가로는 삼마르티니, 알베르티가 있다. 이러한 갈랑양식은 편안한 음악의 보편화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으며 건반 소나타의 균형감, 교향곡 도입부의 선명한 주제 제시 등으로 이어졌다.

4. 감정과다양식(Empfindsamkeit)

감정과다양식은 엠핀트자멜형식이라고도 하며 합리주의에대한 반작용의 하나로 인간의 감정을 긍정적인 것으로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원래는 종교적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점차 개인적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바로크시대의 감정이론이 일반적인 감정이었다면 감정과다양식의 감정은 개별적인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음악구성에서도 개별적 감정의 적극적 표현을 위한 음향의 세밀한 조직화에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음량은 적지만 미세한 셈여림 표현이 가능한 클라비어 작품에서 돋보인다.  C. P. E. 바흐의 건반 소나타, 환상곡, 연주법 이론서가 대표적이며 텔레만의 후기 작품에서도 개인적 감정의 질감을 세밀한 짜임새로 표현했음을 볼 수 있다.  

5.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질풍노도는 전고전시대의 대표양식으로 독일문학의 경향을 일컫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1770년 전후 표현력이 증대된 음악양식을 가리킨다. 이 음악에서는 역동적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폭넓은 대조와 변화가 사용된다. 또한 단조 선호, 넓은 도약과 불협, 현의 트레몰로와 급격한 크레셴도, 갑작스런 침묵과 강한 대비가 긴장을 누적시킨다. 감정과다양식은 기본적으로 클라비어가 중심이 되었지만 잘풍노도의 음악은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양식변화로 대두되었다. 만하임 악파의 ‘로켓’ 동기와 대규모 크레셴도는 드라마를 극대화했고, 이 어조는 하이든의 ‘슬픔’·‘고별’·‘수난’ 교향곡과 모차르트의 G단조 교향곡 등에서 뚜렷하다. 감정과다양식이 클라비어를 중심으로 실내적 섬세함을 탐색했다면, 질풍노도는 공적 장소에서의 에너지와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양식변화, 음향적대비의 확장을 통해 음악의 역동성을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6. 양식과 형식 — 고전주의로의 가교

세 양식은 배타적이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했다. 갈랑의 명료한 문장, 감정과다양식의 내면성, 질풍노도의 역동성이 한데 섞이며 소나타 원리(제시·대조·전개·재현)가 체계화되고, 교향곡·현악4중주·건반 소나타의 규범이 정착한다. 오케스트라는 목관의 상시 편입으로 색채를 넓히고, 협주곡에서는 카덴차·이중제시 같은 관습이 정리된다. 형식의 목적은 과시가 아니라 ‘설득’이었고, 음악은 논리와 감정이 균형을 이루는 수사학으로 이해되었다.

7. 지역과 인물 — 만하임·베를린·런던

만하임 악파(스타미츠)는 균일한 보잉과 정교한 합주, 대규모 크레셴도로 관현악의 제스처 사전을 만들었다. 베를린의 C. P. E. 바흐는 감정과다양식의 대변자로서 불규칙한 문장과 급변하는 표정을 건반에 구현했고, 런던의 J. C. 바흐는 갈랑트의 투명한 문장을 오페라·교향곡에 이식해 젊은 모차르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탈리아의 삼마르티니는 짧은 동기와 선명한 구획으로 초기 교향곡의 뼈대를 세웠다. 이들의 네트워크와 출판 유통은 지역적 취향을 유럽적 표준으로 빠르게 전환시켰다.

8. 공연과 출판 — 공공연주회와 아마추어

궁정 중심의 후원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었지만, 도시의 공공연주회와 구독 콘서트가 빠르게 성장했다. 악보 출판과 임대 도서관이 활성화되면서 가정·살롱의 아마추어 연주 문화가 확산되었고, 건반 소나타·실내악 레퍼토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작곡가의 이름과 작품 번호, 장르 표기가 시장과 청중의 기대를 조직하는 현대적 음악 생태가 이때 뿌리내렸다. 악보의 외형(표제·번호·판권)과 연주 지시(다이내믹·아티큘레이션)의 표준화도 가속되었다.

9. 정리

전고전주의는 바로크의 종결부가 아니라 고전주의의 서막을 넘어선 형성기였다. 갈랑의 평이함은 천박함이 아니며, 감정과다양식의 섬세함은 감상적 과잉이 아니다. 질풍노도의 거친 에너지도 무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극적 균형을 찾는 시도였다. 세 흐름이 만나 소나타 형식과 장르 문법이 응축되었고 그 위에서 하이든·모차르트·초기 베토벤이 빛났다. 이 역사를 알고 들으면 초기 교향곡의 간결함, 건반 소나타의 담백함, 실내악의 대화성은 더 풍부한 맥락 속에서 생생히 다가온다. 전고전주의의 악상은 소박해 보여도 선택된 제스처와 조성 설계 안에서 긴 호흡의 드라마를 예고하며, 고전주의의 정제된 언어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결국 이 시기는 ‘이해 가능한 음악’과 ‘감동을 주는 음악’이 만나는 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