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7세기 바로크로 이어지는 기악음악의 형성과 확립을 다룬다. 악기의 발전과 연주 문화의 변화 속에서 칸초나·리체르카레·춤곡·즉흥곡·변주곡이 씨앗이 되어, 17세기에는 소나타·푸가·서곡·모음곡·토카타·코랄 변주곡·협주곡 같은 장르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는다.
서론 — 성악 중심에서 기악의 부상
중세와 르네상스까지 음악의 무게중심은 미사·모테트 등 성악 장르에 있었다. 그러나 악기의 개량과 연주 문화의 확산으로 기악이 점차 독자 영역을 얻는다. 초창기 기악은 춤 반주나 성악 대체로 기능했지만, 르네상스 후기에 이르러 악기 고유의 음색·기술이 인정되며 독립 장르가 태동한다. 이 흐름은 17세기 바로크에서 기악 장르가 체계적으로 확립되는 토양이 되었다.
1.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악 전통
중세의 대표 악기는 현악 비엘(vielle)·피델(fiddle)·레벡(rebec), 발현악 류트(lute)·하프(harp), 관악 플루트·트럼펫·오보에의 전신 쇼움(shawm), 그리고 건반 오르간(organ)이었다. 중세의 대표적 기악 양식인 에스탕피(estampie)는 여러 개의 짧은 단위 (puncta, 풍타)가 반복되는 구조를 지녔다.
르네상스에 들어 관악 리코더(recorder)·쇼움·트럼펫·트롬본의 전신 색벗(sackbut), 현악 비올(viola da gamba)·류트·하프, 건반 클라비코드(clavichord)·하프시코드(harpsichord)·버지널(virginal)이 널리 쓰였다. 베네치아의 지오반니 가브리엘리는 특정 악기를 지정해 작곡하며 편성 명시 관행을 발전시켰다.
2. 르네상스 기악 장르와 양식
성악 기반 장르인 칸초나(canzona)·리체르카레(ricercare)는 성가적 대위법에서 출발해 기악에 맞게 변형되며 독자적 성격을 얻었다. 춤곡은 파반느(pavane)–갈리아르드(galliard), 파사메초(passemezzo)–살타렐로(saltarello), 알라망드(allemande)–쿠랑트(courante)처럼 짝지어 연주되는 관습을 보였고, 이는 후대 모음곡(suite)·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의 기반이 된다.
즉흥곡 전통은 류트·건반 중심의 토카타(toccata)·프렐류드(prelude/praeludium)·판타지아(fantasia)에서 두드러졌고, 변주곡 양식은 반복 베이스 위에 선율·화성을 변형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바로크의 파사칼리아(passacaglia)·샤콘(chaconne)으로 이어진다.
3. 16세기→17세기 전환
16세기의 기악 장르들은 17세기 바로크에서 한 단계 도약한다. 칸초나는 소나타(sonata)로, 리체르카레는 푸가(fuga)로 수렴했고, 춤곡의 짝짓기 관습은 모음곡으로 체계화되었다. 즉흥곡은 토카타·프렐류드 전통으로, 변주양식은 파사칼리아·샤콘으로 확장되며 구조적 정밀성·표현 폭을 동시에 넓혔다. 이렇게 준비된 토대 위에서 17세기 기악은 장르와 편성, 연주 관습이 표준화의 길에 들어선다.
4. 17세기 기악음악의 주요 장르
소나타(sonata): 칸초나에서 발전해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와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로 분화한다. 교회 소나타는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 실내 소나타는 춤곡 서열을 따른다.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는 두 독주 + 계속저음 편성으로 실내악의 전형을 이룬다.
푸가(fuga): 리체르카레에서 정교화된 모방대위적 형식으로, 주제–응답(real/tonal answer)–스트레토(stretto)–에피소드(episode)의 논리로 전개된다.
서곡(overture): 오페라·오라토리오의 서주로, 이탈리아 신포니아(sinfonia)는 빠름–느림–빠름 3부, 프랑스 우베르튀르(ouverture)는 장중한 부점 리듬의 느림부 + 모방적 빠름부로 구성된다.
모음곡(suite): 알라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를 기본으로, 미뉴에트(minuet)·가보트(gavotte)·부레(bourrée) 등이 삽입된다.
토카타(toccata): 오르간·건반의 즉흥적 장르로, 불규칙 리듬·강한 대비·장식음이 특징이며 프렐류드(prelude)와 결합해 연주되기도 한다.
코랄 변주곡(chorale variations): 루터교 코랄(chorale)을 토대로 한 기악작품으로, 코랄 푸가·코랄 프렐류드·코랄 판타지아·코랄 파르티타로 전개된다.
협주곡(concerto):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은 콘체르티노(concertino)와 리피에노(ripieno)의 대비로, tutti에서 웅장한 효과를 낸다. 독주 협주곡(solo concerto)은 리토르넬로 형식으로 주제와 에피소드의 반복·대조를 확립한다.
정리 — 형성에서 확립으로
중세·르네상스의 기악 전통은 16세기에 독립 장르의 형성으로, 17세기 바로크에서는 표준화된 확립으로 이어졌다. 칸초나·리체르카레·춤곡·즉흥곡·변주양식이 씨앗이 되어, 소나타·푸가·서곡·모음곡·토카타·코랄 변주곡·협주곡이 체계화되었고, 이는 이후 고전주의·낭만주의의 기악문화를 떠받치는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