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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를 읽는 두 지도 — 종단과 횡단(방법론)

by edu414 2025. 9. 19.

서양음악사 이해 관점

Reading Music History

서양음악사를 읽는 두 지도 — 종단과 횡단(방법론)

연재 1편 · 방법론

서론: 한 장의 연표를 넘어

음악사를 한 줄로 세우면 편하지만, 금세 빈틈이 드러난다. 같은 시기에도 지역·장르·기술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한 작곡가 안에서도 전통과 실험이 겹친다. 이 연재는 그래서 두 개의 지도를 제안한다. 세로로 내려가는 종단(縱斷)은 시대의 흐름과 제도·기술의 변화를, 가로로 가로지르는 횡단(橫斷)은 주제와 질문의 연결을 보여준다. 두 지도를 겹치면, 작품은 단순한 연대기상의 점이 아니라 그 시대를 작동시킨 조건들의 교차점으로 읽힌다.

1. 종단: 시간이 바꾸는 것들

종단은 “무엇이 어떤 순서로 바뀌었는가”를 잡아주는 축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음조직이다. 선법과 다성대위에서 장·단조와 기능화성으로, 다시 무조·음열·다원적 문법으로—질서의 원리가 차례로 재구성된다. 그와 함께 리듬/미터도 달라진다. 주기적 박과 균형에서 변미터·폴리리듬·프로세스로, 시간의 표면이 분할되고 겹쳐진다.

음색/악기의 계보는 특히 다이내믹하다. 오케스트라의 표준화·확대를 지나 마이크·테이프·신시사이저·컴퓨터가 등장하며 스튜디오 자체가 악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매체/표기. 네움과 오선, 인쇄에서 녹음·방송·파일·스트리밍으로의 이행은 작곡·유통·청취 습속을 통째로 재설계한다. 종단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간단하다. “이 시대는 소리를 어떤 질서로 묶고, 어떤 기술·공간에서 울리도록 상상했는가?”

요약 · 음조직(질서) → 리듬(시간) → 음색/악기(재료) → 매체/표기(기록과 유통). 네 축의 변동이 시대의 얼굴을 만든다.

2. 횡단: 시대를 가로지르는 질문들

횡단은 특정 연대를 벗어나 반복되는 질문의 계보를 연결한다. 신성과 세속의 진자 운동, 몸과 춤이 남긴 리듬의 흔적, 도시와 네트워크가 구축한 인프라(인쇄 도시 → 살롱/홀 → 방송국/레이블 → 플랫폼), 정치·정체성과 검열의 그림자, 과학·기술이 소리의 원천을 바꾸는 방식, 세계화/번역의 경로, 젠더·노동, 교육·제도, 비즈니스 모델, 끝으로 ‘작품’ 개념(고정물인가, 매번 달라지는 사건인가). 횡단의 요령은 간단하다. “이 음악을 어떤 질문으로 읽을 것인가?” 질문을 바꾸면, 같은 음악에서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

3. 두 지도를 겹쳐 읽는 법

실전에서는 세로축 하나 + 가로축 하나면 충분하다. 고전 교향곡이라면 종단에서는 장·단조/소나타 형식/콘서트홀의 규범을 확인하고, 횡단에서는 도시·공공성이나 정치·정체성의 서사를 얹는다. 그러면 작품은 “형식이 잘 짜인 음악”을 넘어 시민 사회가 만든 청취 방식으로 보인다. 전자음악이라면 종단에서 매체 전환(녹음·스튜디오)과 음색의 1급 요소화를, 횡단에서 기술·노동·도시 인프라를 선택하라. “새로운 소리”는 곧 새로운 제작·분배·청취 체제의 표지로 읽힌다.

4. 작은 연습: 좌표 두 개만 찍어보기

  • 베토벤 5번 · 종단: 장·단조와 소나타 형식, 시민 콘서트홀의 확산. 횡단: 혁명기의 영웅 서사/정체성—왜 그 리듬이 당대 청중을 사로잡았는가.
  • 리게티 Atmosphères · 종단: 음높이보다 텍스처/질량 중심의 설계. 횡단: 공간·청취—홀의 잔향과 “질량으로 듣기”라는 경험 설계.
  • 현대 스튜디오 팝 · 종단: 녹음·편집·믹싱이 작곡의 일부가 되는 매체의 전환. 횡단: 플랫폼/비즈니스—3분대 싱글, 플레이리스트 친화 구조, 이어폰 청취 전제.
점검 순서 · (1) 집이 있는가?(조성/귀환) → (2) 시간은 어떻게 흔들리나?(리듬/형식) → (3) 소스는 무엇인가?(악기/전자/스튜디오) → (4) 무엇으로 남는가?(악보/녹음/파일)

5. 경계를 정확히 — 오해를 줄이는 세 문장

첫째, 음악사는 직선적 진화가 아니라 병렬적 공존이다. 서로 다른 해법이 한 시대 안에서 함께 울린다. 둘째, 19세기 후반의 대형주의 이후 새로움은 압축·분해·심화·매체 전환 같은 다른 방향에서 출현했다. 셋째, 오늘 많은 음악의 ‘원본’은 악보가 아니라 녹음/파일/공연 규칙이다. 매체가 달라지면 작품도 달라진다.

맺음말: 방향을 찾는 습관

종단은 방향을, 횡단은 관계를 보여준다. 두 지도를 겹치면 “좋다/나쁘다”의 감상을 넘어, 이 음악이 그때 거기서 그렇게 울릴 수 있었는지가 보인다. 다음 글부터는 이 프레임을 들고, 각각의 축을 차근히 따라가 보자. 좌표는 간단하다. 세로 하나, 가로 하나. 그 지점에서 당신만의 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길은 작품을 취향의 대상이 아니라, 시대의 조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건으로 바꿔 보여줄 것이다.

© 서양음악사를 읽는 두 지도 · 1편(방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