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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음악적 양상 ― 러시아에서 스페인까지 민족주의의 흐름

by edu414 2025. 9. 10.

 

19세기 말의 음악적 양상 : 민족주의

19세기 말의 음악적 양상
요약
19세기 말 유럽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확산 속에서 각 지역의 언어·역사·민속을 음악 언어로 끌어올렸다. 러시아·보헤미아·북유럽·영국·스페인에서 민족주의 음악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독일권의 후기낭만, 프랑스 인상주의와 병행되어 유럽 음악사의 지형을 바꾼 전환점이 되었다.

배경과 큰 흐름

19세기 유럽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격동의 시기였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자유와 통합을 향한 투쟁을 겪었고, 프랑스혁명의 여파는 유럽 전역에 파급되었다. 서구 외곽의 다양한 언어권에서도 문학을 매개로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작곡가들은 민요·민속춤·전설·역사 등 자국의 자원을 음악 재료로 삼아 민족적 정체성을 반영한 음악을 창조했다.

바그너의 독일 신화 찬양, 베르디의 역사적 소재 사용, 쇼팽과 리스트의 민속 춤곡 수용은 상징적 사례다. 이에 따라 후기 19세기의 음악적 양상은 (1) 서유럽 외 지역의 민족주의 음악의 비약, (2) 독일어권 후기낭만주의의 확장, (3) 프랑스 인상주의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러시아의 민족주의 음악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계기로 자문화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었다. 러시아 음악계는 서구를 모델로 삼은 서구파 (차이콥스키, 루빈슈타인, 스크리아빈)와 민족문화를 찾는 민족주의파(글린카, 러시아 5인조)로 대립했다. 러시아 5인조는 발라키레프, 보로딘, 큐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로 구성된다.

러시아 서구파

  • 차이코프스키: 전통적 서구 양식의 영향을 받았지만 긴 서정 선율과 춤곡적 리듬에서 러시아적 정서가 드러난다.
  • 스크리아빈: 초기엔 서구 화성어법을 따랐고, 후기로 갈수록 독창적 신비주의 화성을 전개했다.

러시아 민족주의파

  • 무소르그스키: 푸시킨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심리극적 성격과 러시아적 소재를 결합했다.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은 회화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대표작.
  • 림스키-코르사코프: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민족적 상상력을 결합. 교향적 모음곡 세헤라자데 등에서 여러 악장의 성격소품을 ‘교향적 모음곡’으로 조직했다.

보헤미아(체코)의 민족주의 음악

보헤미아는 합스부르크와 독일어권의 지배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려 했다. 스메타나는 체코어 대본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와 6악장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민족의 역사와 풍경을 음악화했다. 드보르자크는 브람스의 어법을 소화하면서도 슬라브 춤과 민요를 적극 반영하여 신세계 교향곡 등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북유럽)

  • 그리그(노르웨이): 5음음계·장단조 혼용·민요 선율 활용. 페르 귄트 모음곡, 피아노 협주곡 a단조(슈만의 영향, 동일 조성).
  • 시벨리우스(핀란드): 핀란디아의 주제 선율이 국민 정서를 대변하며 독립 의지를 상징하는 음악적 표상이 되었다.

영국의 민족주의 음악

  • 엘가: 바그너·브람스의 영향 아래 후기낭만 양식을 계승. 넓은 도약과 급격한 하행을 보이는 선율 윤곽. 대표작: 수수께끼 변주곡, 위풍당당 행진곡, 사랑의 인사.
  • 번 윌리엄스: 영국 민요를 수집·활용, 브루흐(후기낭만)와 라벨(인상주의)의 어법을 절충하여 서정적이면서 대중 친화적인 스타일을 구축.

스페인의 민족주의 음악

스페인은 18세기에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나, 19세기말 다시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했다. 알베니스이베리아 모음곡으로 스페인 춤정서를 세련된 예술음악으로 승화했으며, 뒤이어 그라나도스·파야가 전통을 확장했다.

결론: 의의와 영향

19세기말의 민족주의 음악은 지역색 표기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독립과 문화적 자각을 예술로 표출한 운동이었다. 각국 작곡가들은 언어·역사·민속을 음악의 중심에 두어 독자적 어법을 발전시켰고, 이는 20세기 민족악파와 현대의 국가 정체성 형성에도 깊이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