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오페라 ④ — 오페레타 & 오페라 부프
웃음과 풍자의 무대 · 파리–빈–런던 횡단 정리
1. 낭만시대의 또 다른 얼굴: 도시가 만든 웃음과 풍자
오페레타(operetta)와 오페라 부프(opéra-bouffe)는 낭만시대 무대의 또 다른 얼굴이다. 독일 낭만오페라가 동기와 화성, 관현악의 논리로 거대한 서사를 구축했다면, 이 흐름은 프랑스·빈·런던을 가로지르며 도시의 일상, 풍자, 춤과 유머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즉, 이 장르는 특정 민족 양식의 하위가 아니라 도시 대중의 취향과 산업 구조 속에서 자란 범유럽적 무대 언어다. 파리의 오페라 부프는 시사 풍자와 기민한 대화, 빈의 오페레타는 왈츠와 로망스, 런던은 언어유희와 합창의 재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관객은 거대한 신화 대신 익숙한 사회를, 비극적 정념 대신 일상의 속도와 재치를 맛보았다. 극장은 음악 감상실이 아니라 웃음과 유희의 커먼즈가 되고, 빠른 장면 전환과 선명한 선율, 춤의 에너지가 그 커먼즈의 질서를 만든다.
2. 용어와 성격: 오페라 부프 vs 오페레타
오페라 부프는 1850년대 이후 파리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풍자적 희극 오페라다. 어원은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에서 왔지만, 파리에서는 당대 사회·정치·유행을 비틀어 웃음을 터뜨리는 스타일로 굳어졌다. 규모는 비교적 가볍지만, 합창과 앙상블, 춤이 활발하고 대화체(spoken dialogue)를 섞어 리듬감 있게 전개한다. 반면 오페레타는 말 그대로 “작은 오페라”. 대화체·춤·중창을 기본 장치로 삼고, 왈츠·폴카·마주르카 등 무곡성이 짙은 노래들이 서정적 로망스와 만난다. 파리에서 출발한 에너지가 빈으로 건너가면 왈츠의 매혹이 짙어지고, 런던에서는 언어유희와 풍자가 구조적으로 정교해진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전역, 이어 미국까지 빠르게 확산하며 대중극장의 스타 장르가 되었다.
3. 파리—오펜바흐의 풍자 실험실
자크 오펜바흐와 오페라 부프
자크 오펜바흐는 오페라 부프의 상징적 인물로, 단막·2막 규모의 작품들을 쉴 새 없이 내놓으며(약 90여 편) 청중이 이미 알고 있는 신화·고전 소재를 현대적으로 비틀어 사회 풍자를 터뜨렸다.
대표작 〈지하의 오르페우스〉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전복해 당대의 위선과 권위를 조롱하고, 〈아름다운 헬렌〉은 고대 영웅담을 세속적 욕망과 허영의 거울로 바꾼다. 빠른 템포의 앙상블, 재치 있는 대화체, 발랄한 춤(캉캉)이 핵심 문법이다.
프랑스어 ‘부프’는 이탈리아 ‘부파’에서 유래했지만, 파리에서는 순수 희극을 넘어선 풍자와 시의성으로 독자 장르가 되었다.
4. 빈—왈츠의 도시가 만든 로망스
주페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까지
프란츠 폰 주페가 문을 열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정점을 만든다. 〈박쥐〉는 유려한 왈츠 선율과 변장·오해·화해가 얽힌 사회극의 리듬으로, 오페레타의 이상적 균형(멜로디·유머·무도)을 완성한다.
이 흐름은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 등으로 이어져, 달콤한 로망스·세련된 무곡·대화체의 조합을 표준으로 만든다. 음악적으로는 선율 우선의 아리아, 춤곡 융합형 앙상블, 밝은 관현악 색채가 특징이며, 집단 합창이 장면을 장식한다.
한밤의 무도회와 가식적인 사교의 이면—도시인의 정체성과 허영이 유머러스하게 표출된다.
5. 런던—길버트 & 설리번의 ‘말의 음악’
사보이 오페라의 언어유희
런던에서는 W. S. 길버트(대본)과 아서 설리번(음악) 콤비가 등장해 사보이 오페라 전통을 세운다. 〈미카도〉, 〈H.M.S. 피나포어〉, 〈펜잰스의 해적〉 등은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패터 송(patter song), 정교한 합창, 제도와 관습을 은근히 풍자하는 톤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파리·빈에 비해 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언어유희와 합창의 구조적 설계가 강점이다. 텍스트의 리듬과 유머가 음악적 장치가 되고, 넘버의 배치와 합창의 응답으로 무대가 살아난다.
6. 형식과 음악 언어: 공통점·차이점
세 지역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대화체를 섞어 장면 전환을 빠르게 하고, 서곡·아리아·중창·합창 등 넘버를 블록처럼 쌓아 리듬을 만든다. 파리는 풍자와 시의성, 빈은 왈츠와 폴카가 이끄는 춤의 서정, 런던은 언어유희·합창 설계가 돋보인다. 음악적으로는 선율 중심·밝은 조성·명료한 형식이 일반적이며, 관현악은 색채와 무도를 지지하는 역할이 크다.
반면 독일 낭만오페라/음악극의 라이트모티프·무한선율·화성 실험과는 대비가 분명하다. 요컨대 오페레타/부프는 공공극장을 지배한 도시의 엔터테인먼트였고, 낭만주의의 고양된 정서를 일상어로 번역해 대중의 감각과 접속시킨 무대 문법이었다.
7. 유산: 뮤지컬까지 이어진 계보
오페라 부프·오페레타의 대화체·넘버·춤 결합은 20세기 초 뮤지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파리의 풍자 정신, 빈의 왈츠 감수성, 런던의 합창 설계는 노래–연기–무용이 결합된 음악극의 표준을 만들었다. 당대 도시의 웃음과 사회적 감각이 음악·극·무대의 통합 구조 안에서 빠르게 번역되었고, 그 결과 대중예술은 오페라의 바깥이 아니라 또 다른 축이 되었다. 낭만주의가 준 선물이라면, 오페레타/부프는 그 선물을 관객과 재빨리 공명하도록 재가공한 도시적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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