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왜 ‘독일’ 낭만오페라인가
19세기 독일권의 오페라는 이야기하는 오케스트라라는 발상으로 도약했다. 자연·전설·초자연이라는 낭만주의 상상력이 극과 하나가 되고, 관현악이 동기와 색채로 서사를 조직한다. 이 흐름을 연 사람이 칼 마리아 폰 베버, 이를 미학과 제도 차원까지 재설계한 인물이 리하르트 바그너다. 프랑스가 스펙터클과 합창·발레를, 이탈리아가 벨칸토 성악과 드라마의 응축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독일은 동기·화성·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드라마를 내부에서 밀어 올렸다. 즉, 음악 자체가 극의 논리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장르의 성격이 달라진다.
2. 탄생: 베버와 ‘진정한’ 독일 낭만오페라
베버의 〈마탄의 사수〉(1821)는 독일 낭만오페라의 기점으로 꼽힌다. 징슈필의 말과 넘버를 느슨히 이어 붙이는 대신, 조성 선택과 관현악 색채로 장면을 봉합해 음악 내부의 인과성을 만든다. 어둠과 숲, 인간과 초자연의 대립은 반복·회상 동기로 표지되고, 이는 후대의 라이트모티프적 사고를 예비한다. 같은 시기 E. T. A. 호프만의 〈운디네〉는 환상적 이미지와 번호 오페라의 긴장·완화 구조를 결합했으며, 루이 슈포어의 〈파우스트〉는 지속 화성·동기 운용으로 장면의 연속성을 강화했다. 이들의 실험은 “넘버의 집합”을 넘어 “음악으로 엮인 드라마”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결정적이다.
3. 재정의: 바그너의 음악극(Musikdrama)
바그너는 오페라를 총체예술(Gesamtkunstwerk)로 재정의했다.
라이트모티프: 인물·사물·이념을 상징하는 동기가 작품 전반에서 변형·결합되며 서사를 안내한다. 동기의 리듬·화성·관현악 배치가 상황에 따라 갈라지고 합쳐지며, 음악이 말 그대로 ‘내레이션’을 수행한다.
무한선율: 넘버 간 경계를 최소화해 끊김 없는 흐름으로 장면을 연결한다. 그 결과 아리아·레치타티보의 교대라는 관습을 넘어선 단일 대형 악곽이 형성된다.
음향·무대 혁신: 저음 현·관과 금관군을 확장해 중저음의 압력과 광휘감을 확보하고, 극장(바이로이트)의 매몰형 피트·객석 소등 같은 장치로 관현악을 서사의 1인칭에 배치한다.
이 모든 것은 성악의 미학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성악—관현악—무대가 동일한 드라마 논리 아래 호흡하게끔 제작 시스템을 바꾼 결과다.
4. 작품으로 읽는 지도
베버 〈마탄의 사수〉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4부작: 라인의 황금/발퀴레/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파르지팔〉
5. 의의와 비교(프랑스·이탈리아와의 차이)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는 합창·발레·군중 장면 같은 외적 스케일을 통해 역사의 시간과 사회의 공간을 확장했다. 이탈리아는 벨칸토—언어 리듬—아리아의 압축으로 인간 감정의 선율적 정수를 길어 올렸고, 말기에는 베리스모가 현실의 충동을 무대에 올렸다. 독일은 이 둘과 교차하면서도, 동기의 논리·화성의 긴장·관현악의 구조로 드라마를 내부에서 구축했다. 이 차이는 20세기 음악의 길에도 흔적을 남긴다. 동기·음향·형식이 서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발상은 교향시·영화음악의 기초 문법이 되었고, 반음계·복합조성의 위력은 표현주의·무조로 뻗어갔다. 결국 독일 낭만오페라는 “아리아들의 엮음”이 아니라, 음악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거대 서사체라는 가능성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