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양음악사 중세편(8~11세기)에서 ‘수도원의 하루를 울린 음악의 시간표(①편 성무일도와 시편창법)’ 에서의 음계 질서를 다루는 두 번째 편이다. 1편의 음악적 일과와 그 낭송 방식은 여덟 선법이 제공한 규칙 위에서 움직였다. 따라서 이번 글은 교회선법(Church Modes)의 이론적 구조와 각 선법의 정서적 성격을 함께 제시한다. 선법은 단순한 음 배열이 아니라, 음악과 신앙을 질서 있게 조직하던 하나의 언어였다.
교회선법은 고대 그리스의 ‘모드’ 개념에서 유래했고, 중세에 정격(Authentic)과 변격(Plagal)의 쌍으로 정리된 여덟 선법 체계다. 각 선법은 종지음(finalis), 낭송음(tenor), 음역(ambitus)으로 규정되며, 시편창법과 미사의 통상문·고유문을 지탱하는 음계적 질서를 제공한다.
선법은 ‘음계를 조직하는 방식’이며, 중세 교회는 이를 신앙의 질서로 재해석했다.
선법(modus)은 고대 그리스 음악이론에서 유래해 중세 교회음악으로 이어졌다. 명칭은 그리스적이지만, 전례 환경에 맞게 재배치·재해석되었다. 이 과정에는 피타고라스 음률 이론의 잔재/영향이 스며 있다. 음정의 비율과 조화 개념이 선법의 질서감과 안정감을 떠받쳤고, 교회는 이를 신앙의 질서와 결합해 음악을 ‘의미의 체계’로 만들었다.
선법은 단순 스케일이 아니라 종지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음의 중력장’이다. 어디에 머물고(종지), 어디에 오래 머물며 낭송하고(낭송음), 어느 범위에서 주로 펼치는지(음역)가 규정되며, 노래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성무일도·미사의 일관된 음향 이미지는 이 질서에서 비롯된다.
여덟 선법은 정격과 변격의 쌍으로 배열되며, 종지음·낭송음·음역의 상호작용으로 성격을 드러낸다.
정격은 종지음을 기준으로 위쪽으로 넓게 펼치는 경향이 강하고, 변격은 정격보다 낮은 음역에 중심을 둔다. 아래 표는 학습을 위한 정리본으로, 낭송음은 전례 관행과 사본에 따라 다소 바뀔 수 있다.
번호 | 선법 | 유형 | 종지음 (Finalis) | 낭송음 (Tenor) | 음역 (Ambitus) |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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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도리안Dorian | 정격 | D | A | 대체로 D–d | 중심이 확고하고 장엄하며 절제된 인상 |
II | 히포도리안Hypodorian | 변격 | D | F | 대체로 A–a | 음영이 깊고 내밀하게 침잠하는 기도성 |
III | 프리지아Phrygian | 정격 | E | C | 대체로 E–e | 격정과 탄식이 교차하며 긴장을 밀어 올림 |
IV | 히포프리지아Hypophrygian | 변격 | E | A | 대체로 B–b | 온화하고 사색적, 낮은 음역의 안정감 |
V | 리디아Lydian | 정격 | F | C | 대체로 F–f | 맑고 찬란하게 빛나는 밝음 |
VI | 히포리디아Hypolydian | 변격 | F | A | 대체로 C–c | 부드럽고 온유한 흐름, 편안한 낭송감 |
VII | 믹소리디아Mixolydian | 정격 | G | D | 대체로 G–g | 의젓하고 활기찬 개방감 |
VIII | 히포믹소리디아Hypomixolydian | 변격 | G | C | 대체로 D–d | 관조적이고 안정된 균형 |
※ 낭송음(tenor)은 전례 관행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학습 포인트는 ‘종지음·낭송음·음역’의 상호작용을 귀로 파악하는 것.
선법은 전례 텍스트에 표정을 입히며, 같은 문구도 선법에 따라 다른 정서로 빛난다.
도리안은 묵직한 기둥처럼 중심을 세운다. 과장되지 않지만 장엄하고 절제되어, 공동체의 숨을 한데 모으는 느낌을 준다. 히포도리안은 낮은 호흡으로 스며들듯 울린다. 그림자처럼 깊은 울림이 마음을 안쪽으로 데려가며, 개인의 고백과 속삭임을 떠올리게 한다. 프리지아는 불규칙하게 번지는 긴장을 품는다.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탄식의 선율은 응답을 재촉하고, 간구의 표정을 더한다. 히포프리지아는 그 긴장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누그러뜨린다. 온화한 울림이 사색의 공간을 열어, 텍스트의 의미를 오래 씹어 보게 만든다. 리디아는 창을 활짝 연 아침처럼 밝다. 맑은 광휘가 단어마다 반짝이며, 찬미와 감사의 분위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히포리디아는 따뜻한 햇살의 잔광 같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감추고, 온유한 평화를 길게 호흡하도록 돕는다. 믹소리디아는 넓은 마당에 서 있는 듯한 개방감을 준다.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게 하는 활력이 있으며, 축일의 환희와 잘 어울린다. 히포믹소리디아는 높은 곳에서 조용히 내려다보는 시선 같다. 관조적 균형이 문장 끝에 머물며, 마무리의 안정감을 길게 남긴다.
교회선법은 조성 이전 시대의 규범이자, 신앙의 언어를 음악으로 번역한 질서다.
성무일도와 미사의 텍스트는 선법을 통해 정체성과 분위기를 얻었다. 선법은 단성음악의 시대에 ‘어디서 머물고 어디로 돌아오는가’의 감각을 훈련시켰고, 르네상스의 폴리포니와 이후 조성 체계로 이어지는 음악 언어의 밑그림이 되었다. 구조(종지음·낭송음·음역)를 이해하고 정서의 프로필을 체감하면, 선법은 추상적 도표가 아니라 들리는 질서로 다가온다.
- 여덟 선법은 정격/변격의 쌍 구조이며, 종지음·낭송음·음역으로 규정된다.
- 선법은 음 배열이자 정서의 틀로서 전례의 분위기를 조직한다.
- ‘피타고라스 음률 이론의 잔재/영향’이 질서감과 안정감의 근거를 이룬다.
- 교회선법은 조성 이전의 질서이자 르네상스–바로크로 이어지는 음악 언어의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