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수학에서 음악으로
피타고라스 학파가 발견한 음정의 수 비율은 단순히 음계를 만드는 계산법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고 순간 사라지지만, 수는 불변하며 질서를 드러낸다. 고대인들에게 이 둘을 연결한다는 것은 감각적 경험을 영원한 원리와 결합한다는 뜻이었다. 옥타브(1:2), 완전5도(2:3), 완전4도(3:4) 같은 비율이 제시되었을 때, 음악은 단순한 예술을 넘어 수학과 철학, 우주론의 언어로 격상되었다. 1편과 2편에서 음계의 생성 원리를 확인했다면, 이번 편은 그 사유가 실제 음악과 이론에서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그리고 피타고라스 음계의 한계를 넘어선 순정률(Just Intonation)이 어떠한 배경에서 탄생했는지를 살핀다.
피타고라스적 조화와 ‘천구의 음악’
피타고라스 학파는 소리를 수학적 비율로 환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우주의 모든 운동 또한 음악처럼 조화로운 비율을 이룬다고 보았다. 별과 행성이 일정한 질서로 회전하며 내는 ‘보이지 않는 음악’을 바로 musica universalis(천구의 음악)라 불렀다. 이 개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지적 프레임이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세계의 영혼을 구성하는 데 수 비율이 사용되었다고 서술하며, 비율이 세계의 근본 원리임을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나, 조화의 개념을 자연 철학의 핵심 주제로 다루었다. 중세의 보에티우스는 음악을 musica mundana(우주의 음악), musica humana(인간과 영혼의 음악), musica instrumentalis(실제 들리는 음악)로 구분해 음악을 인간과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는 철학적 열쇠로 제시했다.
수학적 비율은 감각의 소리를 “질서의 언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이 철학·교육·과학의 공통 기반을 만들었다.
근대에 이르면 피타고라스적 조화는 과학적 상상력에도 불씨를 제공한다. 17세기 요하네스 케플러는 『우주의 화성』에서 행성 궤도의 속도와 간격을 음악적 비율로 해석했고, 천체 운동이 조화의 원리에 따라 배열된다고 주장했다. 즉, 음악의 조화는 예술의 문제이자 우주를 읽는 방식이었다.
실제 음악 속 피타고라스 음계의 흔적
수학적 이상은 실제 음악의 문법을 형성했다. 완전5도의 연쇄로 구축된 피타고라스 음계는 중세 교회 선법의 기초가 되어 성가와 초기 다성음악의 음정 조직을 규정했다. 도리아·프리지아·리디아 같은 모드는 이 체계 위에서 성립했으며, 종지에서 완전음정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관습을 낳았다. 이러한 감각은 대위법 이론으로 제도화된다. 두 성부가 평행으로 완전5도나 옥타브를 진행하는 것은 금지되었는데, 완전음정의 ‘닮음’이 지나치게 강해 성부 독립을 해친다는 논리였다.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 개념이 작곡 규칙으로 굳어진 사례다.
- 완전4도·5도의 절대 안정: 종지와 구조음에서 핵심 축으로 기능
- 병행5도·8도 기피: 독립 성부 유지와 공간적 입체감 확보
- 3도·6도의 ‘늦은 승격’: 피타고라스 체계에서 거칠게 들려 14세기까지 불협 취급, 르네상스에 협화음으로 정착
르네상스 시기의 합창을 들어보면 3도·6도가 만드는 부드러운 화음이 곡의 결을 지배한다. 조스캥 데 프레, 팔레스트리나와 같은 작곡가들이 구현한 투명한 울림의 배후에는, 피타고라스 음계의 한계를 넘어 보다 ‘귀에 맞는’ 음정 비율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순정률: 더 자연스러운 조화
순정률(Just Intonation)은 배음 구조에 맞춘 단순한 정수비를 채택해 화음을 맑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조율이다. 핵심은 3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다. 피타고라스 음계의 장3도는 81:64로 복잡하고 날카롭게 들리는 반면, 순정률의 장3도는 5:4로 단순하며 배음과 정확히 일치해 부드럽다. 단3도(6:5) 역시 자연스러운 울림을 제공한다. 합창단과 르네상스 앙상블은 이러한 비율을 직관적으로 찾아내며, 성부가 포개질수록 생기는 배음의 합이 ‘맑은 화음’으로 지각되도록 조율했다.
순정률의 장점
- 3도·6도를 포함한 화음의 울림이 탁월하게 맑고 투명
- 배음 간섭 최소화 → 합창·실내악에서 특히 유리
순정률의 단점
- 특정 조성에 최적화, 전조가 잦으면 음정 불일치 누적
- 근대 이후 조성 확장·전조 빈도 증가에 실용성 저하
르네상스 음악의 신적·명상적 울림은 순정률의 미학과 깊게 맞물린다. 다만 바로크 이후 조성 언어가 확장되고 전조가 흔해지면서, 순정률은 실용적 제약을 드러냈다. 이 모순은 결국 평균율이라는 타협으로 이어져, 어떤 조에서도 비슷한 음정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된다.
<배음 구조 스케치>
기준음(1f)을 왼쪽, 배음을 오른쪽으로 표시한 막대 스케치입니다. 단순화된 시각화로, 배음과 순정 비율의 감각을 돕습니다.
<피타고라스 3도 vs 순정 3도>
항목 | 피타고라스 장3도 | 순정 장3도 |
---|---|---|
비율 | 81:64 | 5:4 |
센트값(이론) | ≈ 407.82¢ | ≈ 386.31¢ |
청감 | 다소 날카롭고 긴장 ↑ | 부드럽고 투명, 배음 일치 |
장점 | 완전5도 사슬과 호환 | 화음의 맑음·안정 탁월 |
주의점 | 3도 협화감 약함 | 전조가 잦으면 불리 |
맺음말: 조화에서 표현으로
피타고라스는 소리의 배후에서 수학적 질서를 발견했고, 그 질서는 음악을 우주의 언어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음악은 연주와 청취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다. 수학적 완벽함만으로는 인간의 귀가 원하는 미묘한 감각을 모두 포착할 수 없었다. 순정률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며, 원리와 감각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피타고라스적 질서와 순정률의 맑음은 상충하면서도 서로를 자극해, 평균율이라는 타협점을 낳았다. 그 결과 음악은 특정 조성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확장되었고, 서양 음악은 거대한 표현의 세계로 나아갔다.